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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기

환상을 품을 수 있는 능력은 중요하다 - 넷플릭스 Anne with E

0. 멘토링을 했다. 작년에도 하고 1년 만이다. 사실 멘토링 질문은 전년대비 비슷했지만 내 답변이나 관점은 엄청 바뀐것 같다. 우선 1년차가 했던 그 많은 고민들에 대해 나름의 답을 찾기도 했고 나름의 고민이 다시 생겼다. 힘든 순간 힘들어만 할 필요는 없더라. 회사 일에서 거리두는 연습도 훨씬 많이 됬고 절박했던 과거의 나 자신에게 미안하지 않으려고 오늘도 열심히 살려고 한다. 젊은 날 하루의 값은 생각보다 싸지 않으니까.

 

작년에도 멘토링을 같이 했던 ㅈㅇ오빠하고 회사생활에서 제일 많이 좋아하는 호롤리, 그리고 ㅈㅎ오빠랑 같이했다. 사람가리는 제시가 원래도 좋아하는 사람들이지만 뭔가 내 동료들을 다시보게 된거 같다. 멋지고 마음이 단단한, 나름의 서사를 써서 여기까지 온건 알고 있었는데 다들 각자만의 이야기가 있었고 그렇게 서로의 시간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입사하고 2년동안 앞만보고 달리느라 이런 시간이 많이 없었다.

 

 

1.  일하기 시작한지 벌써 나도 만으로 4년이 다 되 간다. 요새 드는 생각은 내가 이 일이 뭔지 알고 어떤 어려움이 있고 어디까지 갈수 있으며 연봉수준은 어떻다 등등 장단점과 한계를 4년 전에 투명하게 알았다면, 그러면 이 일을 안했을 수도 있겠다는 거다.

 

누구나 처음엔 모른다. 몰라서 하는 거고 또 그렇게 모르는 채로 자신의 업에 대한 환상과 공상? 나아가야 할 미래상을 업에 주입하려고 하면서 변하지 않을 것 같은 현실에 조금씩 금이 간다. 어떤 일을 알지도 못하면서 하고싶다고 하는 건 문제지만 어느정도는 알고 내 포지션/연차의 한계로 모르는 건 어쩔수 없다. 사실 중요한건 알고 모르고가 아니라 이상과 현실의 끈을 둘다 놓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게 아닐까.   

 

 

2. 이렇듯 이상과 환상을 마음 속에 품고 지켜나가는 힘은, 구직자에게도 필요하지만 현직자들에게도 필요도가 높다. 앞으로 계속 나아가게끔 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현실에선 좋은 일보다 안좋은 일들, 힘든 일들, 내가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다. 특히 학생도 아니고 내가 경제활동을 통해서 노동과 결과로 소득을 얻어내는 필드에서는 다소 힘든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렇게 현실에 충실하다 보면 현실적이되고 유능해지는 건 맞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조건이기도 하고.

 

다만 현실의 제약들에 나도모르게 주저앉아버리거나 고민을 깊게 해서 나름의 해결책을 도모하는 것이 아닌 불평만 하고 있는 순간 정말 손발이 묶여버리는 것 같다. 각 업계의 리더들이 비전이나, 실무자 입장에서 볼때 “듣기는 좋은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그들이 비전을 제시해줘야 하는 잡레벨이라서도 있지만 그 이상을 마음 속에 계속 품고 왔기때문에 거기까지 간게 아닐까 생각한다.

 

이번 멘토링에서 우리 회사의 좋은점과 앞으로의 커리어 계획 등등을 질문으로 정리해서 미리 멘토 패널들끼리 공유해봤는데 우리회사는 장점이 많은 회사였고 내 동료는 멋진 사람이었다. 현실의 자잘한 물결에 우린 이런 소중한 것들을 많이 잊어버린다. 그리고 그런 소중한 것들은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라, 내 스스로 소중히 품어 계속해서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사실도.

 

 

3. 빨간머리 앤은 사실 인스타 콘텐츠로 많이 변질됬지만 사실 굉장히 반항적이고 사회 개혁적인 작품이다. 고아에 대한 입양, 흑인 인권이라던지, 성소수자, 인디언에 대한 서구 관점의 폭력적인 교화, 여성이 바지를 입고 선생님이 된다거나 여성이 대학에 가는 등 그 시대의 변화하는 시대상과 변화에 대한 저항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러한 고정관념에 대한 반항, 그 논란들은 21세기인 오늘날에도 계속된다.

 

 

이 작품의 중심은 “빨간 머리”로 대변되는 유별난 고아. 앤이다. 앤은 다이애나처럼 유복한 집안의 사랑을 받고 교회에서 어렸을때 부터 좋은 교육을 받은 아이가 아니다. 이 사회에서 사랑받지 못한 자. 기존의 관습이나 규준에 완전히 서투르며, 다른 생각을 하고, 그녀의 공상과 생각은 다소 괴짜같아서 양육자 마릴라는 이 아이의 개성을 어디까지 포용하고 어디까지 다듬어야 할지 본인도 헤매 가면서 배운다. 이렇듯 변화는 항상 소외된 자들, 주류의 문화에서 벗어난 깍두기, 미운 오리새끼에서 시작된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사회 집단에게 다소 생소하고 거부감이 들지만 결국 그 사회가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가기 위한 외침이기에 가장 필요한 목소리다.

 

고아원에서 괴롭힘당하고, 위탁가정에서 학대받던 앤은 본인이 코달리어 공주이고, 나를 사랑하는 가족들과 궁전(가정)이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공상으로 현실을 버티던 앤은 매튜와 마릴라에게 입양되고 나서도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이상향을 본다. 기존의 틀에 얽매여 살던 사람들의 틀을 깬다.

 

관습의 파괴와 가치관의 재정립은 때때로 피해를 수반한다. 앤 역시 때로는 왕따를 당하거나, 오해를 당하거나, 실수를 한다. 매튜와 마릴라의 사랑 아래 그 지난한 과정을 거쳐 그녀는 마을의 소녀들 모두와 대학에 가고, 흑인을 마을의 공동체로 받아들이며, 그 모든 편견을 깬다.

 

그렇게 현실을 버티려 공상하던 소녀는 그 공상에서 벗어나 드디어 이상을 현실로 만드는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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