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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기

안맞는 회사를 다니는 것의 장점

0.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제 인생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 그럴 수도 있는데 유독 인생이 꼬였던 것을 아마 고등학교-대학교때부터 저의 방황을 지켜본 사람들은 잘 알지 않을까..

 

1. 아무튼 저는 저랑 딱 맞는 환경에 바로 탁! 하고 조인해 본 적이 없습니다. 대학교도 재수까지 했는데 실패를 해서 맞지 않는 과에 왔고, 알바하고 돈벌어가고 초과학점 대외활동 공모전을 하면서 3년 내내 전과 준비를 했는데 그것도 실패를 했습니다. 저의 노력신화는 무수히 깨져왔던 것 같습니다. 죽어라 열심히 했는데 처절하게 안됬던 적이 참 많았습니다. 

 

역대 최고의 취업난 때문에 인턴도 10개 이상씩 지원하면서 인턴 자리를 겨우겨우 구하곤 했는데 그때 원하는 과에 노력의 결실을 무사히 맺어 그 전공을 하게 된 친구들, 전공에 맞는 인턴 자리를 2-3개의 지원 후 모두 붙어서 마음껏 실력을 발휘하는 주위 분들을 정말 부러워 했던 기억이 납니다.  

 

2. 회사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학교때와 달리 Self-centric view 를 제가 벗으니까 그런가 특히 사회초년생 중 맞지 않는 회사에서 고생하시는 분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맞는 회사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는 정도 그리고 맞는 회사 다니는 사람도 나름대로 어려움 있음) 

 

우선 젊은 분들의 경우 자유롭고 진보적인, 학교때의 준비를 마음껏 풀어낼 곳을 찾으며 취업을 합니다. 그리고 알다시피 요새 취업이 너무 지난하고 어렵습니다.. 이런 분들은 몇십년 전 전혀 다른 기업문화를 기반으로 성장한  큰 조직에서 적응하는게 많이 어렵고 현타가 옵니다. 

 

모든 기업은 개인을 대체 가능하게 만들려고 하기 때문에 당연히 본질적으로 회사는 개인이 자아실현을 하는 시스템을 딱히 구축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개인이 회사를 이용하며 자신의 커리어를 주도적으로 그려 나가야 하는데 사실 이렇게 열린 생각 있는 사람 만나기가 하늘의 별따기 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개인을 대체불가능하게 하고 조직은 개인을 대체가능하게 하면서 상호 발전하는데, 좋은 기업에는 이렇게 깨어있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제 경험상)

 

3. 저도 기성세대의 직장생활에 실망도 많이했고 제가하고싶은 일을 드디어 하게 됬지만 생각지 못한 사람들을 mobilize 하기 힘든 분위기에 좌절하기도 하고, 어렵게 initiative를 던진다 하더라도 실패를 하며 위에서 쪼임도 많이 있었는데요. 

 

그래서 고민을 엄청 많이했던 것 같습니다. 저 스스로가 하고싶은게 많고 워낙 generalist 적인 성향이 있기도 했고, 무엇보다 아직 어리고 자신의 특기를  찾아갈 시기라서 시행착오가 엄청 많았습니다. 사실 지금도 만만찮게 많은것같음

 

그럴때마다 선배들에게 조언도 빌리고 공부도 해보고 취미도 찾고 네트워킹도하고 사이드프로젝트도 하고 책도 많이 읽었는데 (<열정의 배신> 추천) 그때마다 선뜻 손을 내주셨던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 고민들은 사실 아직도 연장선상에 있지만 이 고민은 결코 끝나는게 아니고 완벽한 정답이 숨겨져있고 제가 찾는게 아니라 제가 저만의 정답을 만들어가야겠다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좀더 여유로워지고 현명해진 것 같습니다. 

 

4. 완벽한 팀, 완벽한 포지션에 조인하게 되면 좋겠죠. 저도 그런 드림 팀에 조인했을 때가 정말 좋았고 앞으로도 또 그런 팀에 들어가고 싶지만 사실 그런 행운은 인생에서 많이 찾아오지 않습니다. 우린 지난하고, 늘 조금 부족하고 아쉬운 상황에서 그런 드림 팀의 상황으로 나아가야만 하죠.

 

제가 생각했을 때 안좋은 회사를 다닐 때의 장점은 그런 나아가는 힘과 고민, 그런 인생의 리더십을 더욱 강하게 트레이닝 할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트레이닝에서 오는 자신감은 앞으로 마주하는 도전을 더욱 유연하게 받아들이게 합니다. 

 

대충 잘 맞는 회사 가서 생각 없이 따라가다가 나 자신에 대해 고민하는 힘을 놓아버리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인생의 소신을 갖추게 됩니다. 내 커리어는 어떻게 그려야 할지, 다들 나와 달리 안정성만 외치고 있는 상황일때 어떻게 사람들을 설득해서 일을 만들어 내야 할지, 시행착오와 성공의 비율은 어떻게 관리를 해야 하는지, 안좋은 상황에서 어떻게 희망을 가꾸어 실제로 현실로 만들어내야 하는지 이런 고통스럽지만 결국 꺾이지 않는 유연함을 만들어 주는 고민들은 일반적인 3년-5년차에서 따라오는 무기력이라던지 이직에서 오는 막연한 무서움 같은 것들을 단숨에 뛰어넘게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제가 인생 살면서 처음엔 인생 잘 풀리게 매니징 해나가는 사람이 부러웠는데 좀 지나보니까 정말 존경하고 따르고 싶은 리더는 "상황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은데, 재밌게 일해 나가봤으면 좋겠어요" 라고 자신만의 분위기와 리듬을 유쾌하게 이끌어나가는 분이었습니다. 

 

5. 노력은 보상을 안해주기도 하지만 고민은 반드시 보상을 줍니다. 2년 반이 채 안되는 애매한 연차로 이직하면서 고민이 되게 많았습니다. 저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하기보다는 이직시장에서는 그 사람 자체를 보기보단 3년 이상을 무조건적으로 요구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최근 이직을 경험하면서 느낀 건 세상에 공짜 없습니다. 매일매일 고민하며 지치기도 하고 이렇게까지 일할 일인가 싶었는데 인터뷰에서 깊게 고민했던 걸 공유하는게 눈에 보이는 연차 수보다 나의 실력/진가를 보여주는데 많은 도움이 되어 결국 저한테 더 잘 맞는 포지션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돌아보면 제가 고민이 많았던 이유는 제가 끊임없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고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항상 고민은 깊고 짧게 해볼 가치가 있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고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뭘해야될지 모르겠어서 아무 생각도 안하는 건 분명 편하겠지만 개인적으로 그다지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제가 새로 조인하는 포지션도 100프로 딱 맞기보다는 서로 지지고 볶으면서 알아가고 맞춰가는 그런 열정적인 인생의 연장선에 있는 거겠죠.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인생의 리더십을 넘겨버리지 말고 계속해서 치열해서 고민하는 것입니다. 긴 인생에서, 특히 사회 초년생 첫 포지션에서 100프로 만족스럽지 못한 일자리로 시작 했다 해도 괜찮습니다. 이 안주하기 쉬운 세상에 나 자신이 누구인지 주도적으로 고민하고 뜻을 가지고 미래를 준비하는 우리는 지금 누구보다 잘 하고 있는 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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