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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cation

아주 어쩌면 연차를 채워줄 책

Introduction.

연차를 하루 쓰게 된 어느날, 높은 업무 강도를 견디느라 몸과 마음이 탈탈털려있었답니다.
쉬거나 어딜 딱히 가기도 그렇고, 늘 팽팽 돌아가던 머리와 집중해있던 몸의 긴장을 내려놓고
힘을 뺀 채 보내게 된 어느 하루, 읽어야지 사놓고 시작도 안한 책을 폈습니다.

아주 어쩌면, 이 두권의 책이 다른 사람의 연차도 채워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습작같은 글을 남깁니다.

 

<기분 벗고 주무시죠>

웨일북, 박창선 지음

북커버는 이 책이 불안하고 지친 현대인들에게 주는 위로와 조언이랬는데, 왜 자서전 같았는지 :)

아마도 이 미친 대한민국 사회에 솔직하고 미숙하게 덤비면서 작가님 스스로가 얻었던 상처와, 나름의 해결책과, 버팀과, 날 것 그대로의 그 위로가 그대로 전달되어서 일 거에요.

힐링이다, 캄(Calm)이다, 같은 상업적인 색이 잔뜩 묻어나는 트렌드 2020에 나올것 같은 단어가 아니라 
힘들었던 오늘의 "기분"을 "벗어라"라는 특유의 언어조합이 좋네요.

ㅎㅎ현대 사회의 여러부분을 명쾌하게 짚어내는 작가님 특유의 관점과 유머러스한 화술이 리빙포인트인 책입니다. 글구 뭔가 30대 중반은 넘어야 쓸수 있을거같은 책이네요.

 

 

1만시간의 법칙 어쩌고 하는 자기계발서, SNS에서 1초정도 뽕 오게 하는 카드뉴스, TED 같은건 잠깐 밀어두어도 좋다는 책입니다. 그런걸다 읽고 봐봤자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고 내 삶엔 딱히 변화가 생겨난 적이 없으니까요.

오히려 작가님은 우리 주위를 채우고 있는 것들, 많이 떠다니는 단어들에서 우리의 모습을 재조명합니다.
계란후라이, 워라밸, 인스타를 채우는 아마존 취업했어요 마케팅 4주 실무강의 들으세요! 같은 것들이요.
참고로 제 최애는 호가든 한캔(23페이지), 자존감(174페이지)입니다.

교과서에서, 미디어에서 알려주지 않았던 세상을 살아가는 나름의 답을 공유해준다는 점에서,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점에서 귀여운 웃음을 짓고 싶다면, 이 책을 읽으세요.  

<기분벗고 주무시죠>, 119페이지

 

솔직하고 호감형의 문체로 여러 내용을 조곤조곤 적어냅니다. 그래서 다소 꼰대같은 내용도 듣게되네요.
예를들어서 "일은 실력만으로 하는게 아니다"라는 윈도우 업데이트 챕터 같은거(84페이지)요.
그러나 이미 친한 오빠 형같은 책의 매력에 빠져서 직장 내 꼰대 부장님이랑 똑같은 말을 하는 것임에 불구하고 쇽쇽 듣고 아 맞아 그렇지라고 인정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덧. 일기를 틈틈히 쓰는 편인데 내가 이런 말을 했었구나. 하는 순간이 많더라고요.
때때로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를 지키기도 하는데, 이 글을 적어낸 순간의 작가님이 미래에 또다른 도전을 겪어낼 스스로를, 그리고 같은 시간을 살아내는 여럿을 지켜줬으면 좋겠습니다.

 

 

<제로 투 원>

한국경제신문, 피터틸&블레이크 매스터스 지음

<제로투원>,9페이지, 머리말 중

 

강해지고 싶은 해적왕을 위한 책입니다.

루피는 해적왕이되겠다는 황당무계한 말을 하지만, 사실 제일 이상한건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당당하게 밝히고 최선도 다하지 않는 우리 모두인 것 같습니다. 물론.. 간혹가다 진짜 이상한거 하겠다고 말하고 다니는 애들이 있긴 있죠.

피터 틸은 실리콘밸리의 루피입니다. 루피같은 사람은 사실 실리콘 밸리에 많습니다. 싱가폴에서 유학할때  테슬라의 창업자 일론 머스크에 대한 이야기를 수업에서 하게 된 적이 있었는데 미국인가 독일에서 온 친구가 일론 보고 "he's a really weird dude.(그사람 진짜 좀 이상한 사람이야)"라고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또 한명의 weird dude 피터틸은 무려 1998년에 전자결제시스템 페이팔을 창업해서 온라인 상거래 시대의 첫 포문을 연 사람입니다. 될 것 같은 기술 스타트업을 찾아내는 사업 수완도 특출나서 페이스북과 링크드인의 초기 투자자이기도 하고, 피터 틸의 또다른 회사인 팰런티어 는 세상에서 제일 수상한 스타트업이라는 별명이 있죠.

 

이런저런 이야기를 테크크런치를 보고, 미드 실리콘밸리를 보면서 대강은 알고 있었는데 

이번 책을 읽고 나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창업자 피터 틸의 개인적인 철학과 성향을 알게 된 느낌이었습니다. 창작물은 창작자의 성향을 가장 솔직하게 담아내기 때문입니다.

<제로투원>, 119페이지

 

전 챕터에 거쳐 기존의 비즈니스 트렌드에 알량하게 얹혀가 보려는 통념적인 사업 방식을 명쾌하게 지적해냅니다. 세세하게 따졌을때 국소적인 관점이나 국내 현상에 비춰봤을때 이해가 안되는 점이 있지만,

아직 알파고도 나오지 않은 시기에 이런 과감하고 또 올바른 목소리를 뚜렷하게 냈다는 점이 멋집니다.

피터틸 저자분 저랑 잘맞을거 같아요 연락주세요.

 

이 책은 사실 사자왕이 되고자 깝치는 아기사자 심바보다는,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 뒤통수 한대 쳐맞고 좋은게 좋은 거지 라고 어느정도 체념한 중소년 사자 가 읽으면 좋은 책입니다. 

 

큰 뜻을 가지고 대기업에 입사한 사람들 중 일부는
느린 대응 속도, 복잡 다단한 이해관계, 고객과 비즈니스를 하는 본질이 집중하기 어려움 등등에
초반에는 화내고 고쳐보려고 합니다.

처음에 모든게 다 부정적으로 보이고, 내 진가를 알아봐주지 못하는 매트릭스에 좌절하고,
이래서 대기업은 안되는건가 싶어서 퇴사의 위기를 엄청 심하게 겪는 곡선을 그립니다.
그 이후 정말 퇴사해서 자신의 길을 가거나, 어느정도 체념+적응해서 조직에서 자리를 찾습니다. 제 이야긴가요?

 

당신이 사자인지도 잊어버리고 있었다면, 그리고 내가 입사했던 품었던 뜻을 마음 한구석에 묻어두고 있었다면, 묻어두었다는 사실도 계속해서 외면하고 있다면 이 책을 꺼내세요. 그리고 고민하세요.

내가 지금 이렇게 사는게 몇년 전 너무나 노력했던 나에게 부끄럽지는 않은지 말입니다.

지치지 않고 내가 원하는 인생의 궤도로 나를 끌어가기 위해 정수리에 부어줄 냉수가 필요하다면,
한라산 정상 백록담 얼음물을 한바가지 뒤집어 쓴 후 이 책을 덮길 바랍니다.

 

+덧.

한달에 한번씩 모이는 독서모임 Wildcard 분들과 함께 읽었는데 재미있는 인사이트가 많아서 몇개를 추려 공유합니다

  • 2014년에 5년뒤(2019년, 지금), 10년뒤를 예측한 관점을 시간을 돌려서 읽어보는 것 같아서 재미있었다.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지만 어쨌든.
  • 사실 이거 그냥 똑똑한 스타트업 씬에 있는 사람 다할수 있는 말인데 이사람이 성공하고 나서 책내니까 하나의 패러다임이 되는 거 같다. 역시 이래서 사람은 성공을 해야...
  • 진짜 힘들때 어떻게 버티고 해결했는지 그 생생한경험을 알고싶었는데 그런건 없어서 아쉬웠음. 그냥 존버한건가?

 

Epilogue

직장인에게 연차는 피같습니다. 거의 군인 휴가급입니다 진지합니다..

그래서 피같은 연차를 쓰고 집에서 쉬면서 책을 본다고? 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는데 그런 분은
아마도 직장에서 피가 마르는 것 같은 경험을 못해본 사람인거 같습니다.

왠지 직장에서 피가 빨리며 몸도 지치고 머리도 멍청해지는 것 같은데, 
하루쯤은 몸의 에너지를 채우고 머리에도 밥을 줘야할 필요가 있기에

그런의미에서 연차를 하루정도 쓰고 차분한 호흡으로 책을 읽는 건 아주 타당한 행동 반응이 아닐까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책들이 여러분의 피가 되고 살이되서 최후의 만찬 포도주와 빵이되줄거라는 보장은 못합니다ㅎ 왜냐면 연차는 정말 피이고 피 그 자체이기 때문이죠. 그냥 여건되면 여행가세요..

 

*원문보기 > https://brunch.co.kr/@jessiejisulee/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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