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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기

시니어 분들께 한마디

*원문보기 >> https://brunch.co.kr/@jessiejisulee/205

시니어가 많은 회사에 다니고 어느정도 제 백그라운드가 알려질만한 시간이 지나자 자녀분 교육에 대해서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아요! 사실 전 젊은 기업, 젊은 스타트업에 다녀서 결혼은 하셨지만 자녀가 없거나 화려한 싱글 분들과 일은 많이 해봤지만 엄마 아빠 세대 그 아랫 세대와 있어본 적은 별로 없어서 생소한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외국어고 출신이라던가, 연대를 나와서 바로 외국계 기업에 취업을 했다던가 유학을 스스로 갔다던가 같은 제 백그라운드를 들으면

어렸을때 학원을 몇개 다녔는지, 엄마가 방목 스타일이었는지 관리를 빡세게 했는지, 외국에 살아야만 영어 교육이 되는지, 외국어고 입시가 어려운지 같은 것들을 물어보시는데 사실 10년도 더 된 일이라 기억이 잘 안납니다..ㅎ..

 

그리고 사실 대학 간판 고등학교 간판같은게 실제로 내 인생에서 큰 마일스톤이 되어줬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물론 취업에는 분명히 도움이 되었던 것 같고 세계적인 석학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아주조금 많았었던 건 즐거운 일이었지만, 오히려 그냥 일이 안풀릴 때 나 자신에 대한 고민을 심도깊게 했던 것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꼰대마냥 내가 인생 고생한 이야기는 밤새서 할 수 있지만 어렸을때 학원을 몇개 다녔는지가 중요한지는 사실잘 모르겠어요.. 어렸을때 사교육을 많이 안했고(중학교 때 집 앞 보습학원 1개 다님) 부모님도 그런 쪽으로 타이트하게 관리를 하시지 않았거든요. 외국어고도 가고 싶어서 부모님께 상담한 후 혼자서 독학으로 공부를 했었습니다. 주위에서 그런 질문을 하도 많이 받아서 엄마한테 전화해서 "엄마 나 어렸을때 학원 몇개 다녔지?" 라고 물어보니까 엄마도 기억을 잘 못하시더라고요. 애초에 많지가 않아요. 고등학교때도 기숙사 학교를 다니니까 인강만 들었었고 재수때 재수학원 다닌 정도? 엄마가 말하길 스스로 들을 인강, 스스로 다닐 학원/학교를 책임감 있게 정하려고 해서 좋았는데 남들이 하는 말은 듣지도 않아서 힘들었다고...

 

그리고 점점 학벌이 의미가 없어지는 것 같아요. 만약 제가 지금같은 시대에 태어나 내 미래를 결정한다고 하면 제가 걸어왔던 길대로 외국어고에 좋은 대학을 선택했을것 같지 않아요. 더 용감하고 끈질기게 엄마 아빠한테 유학을 보내달라고 졸라서 지금처럼 야매로 코딩을 배우는게 아니고 처음부터 언어도 차분하게 배우고 해외에서 더 많은 기회에 도전해봤을 것 같습니다. 지금도 계속해외에서 일하려고 준비하고 있고 ㅎㅎ

 

어렸을 때 하고싶은게 너무 많고 세상에 관심도 너무 많았기에 지방 출신의 저희 집 가정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대학교 때도 새로운 삶을 살아보고 싶었는데 인맥부터 기회를 찾는 것까지 아주 맨땅에서부터 시작했어야 했죠. 이미 경험이 많은 친구들과 덤벼서 경쟁하는 것도 힘들었어요. 사실 제가 지금까지 올수 있었던 건 제가 잘나서라기 보다 그 어려웠던 시절 하고싶다는 마음하나로 덤볐던 저를 믿어주고 알아주고 기회를 주셨던 분들이 있어서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에 집이 있어서 3개월마다 거처를 옮기는 걸 걱정하지않아도 되는 친구들과,어렸을때 유학을 갈수 있고 가족 중에 내가 가고자 하는길을 걷는 사람이 있는 분들이 정말정말 부러웠던 기억이 나요. 사실 그들만의 고충이 있었겠지만 그땐 저에게 기회조차 없는 것 같았거든요. 자격지심 그 자체로 살았던 시절이었죠.

 

여러 시행착오와 뻗댐과 어떻게든 해볼려고 난리를 한바탕 진 후 지금에 왔습니다. 아주 조금 여유가 생겨서 계속해서 인생의 도전을 이어나가려는 제가 감히 생각했을 때 정말 중요한 건 좋은 대학이나 좋은 고등학교, 좋은 직장이 아닌 것 같아요. 본인이 원하는게 뭔지 확실하게 알고, 스스로 동기부여를 해나가는 인생의 주도권을 잡는 마음, 그리고 무엇보다 행복이 무엇인지 아는 능력이 아닐까요. 이제 더이상 주어진 환경에서 적응해서 살기보다는 새로운 장을 열어나가고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나가야 하는 시대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저도 말은 이렇게 하는데 솔직히 말이쉽죠.. 올해 목표로 시작한 일본어학원은 한달째 안가는중  그리고 원래 남의집 애는 빨리크고 남의집 애는 속을 안썩입니다. 사실 그건 보이는 것 뿐이고 사람사는거 다 똑같다고 생각해요 전 스물 일곱살 먹어서도 요새 종종 속을 썩입니다. 얼마 전 부모님과 이야기하다가 옛날 사진을 보면서 엄마가 말하길 "우리 지수가 이렇게 귀여웠는데. 오랜만에 너희 어렸을 때 사진을 보니까 너무 귀여운거야." 라길래 제가 말했죠. "엄마 얘들이 왜 귀여워보이는줄 알아? 다 키워 놔서 귀여운거야. 애네들을 다시 사람을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을 해봐" 라고 했더니 귀엽다고 안하시더라고요. 사람만드는게.. 참 어렵죠..

 

메가스터디 손주은 회장은 2020 스피치에서 우리 아이들은 스스로 길을 찾아나가고 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PI2yaPBD-4) 맞는 말인것 같아요. 사실 자기 갈길은 자기가 만들어 가는 거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저 옆에 있어줄수밖에 없는 거 아닐까요. 같이 속썩어 가면서도 함께 해줄 부모님이 있고, 내가 생각하는 것 외에 다른 세대의 입장에서 어떻게 해줘야할지 고민해 줄 부모님이 있어서 아마 우린 다 괜찮을 거에요. 때로는 싸울 거고, 때로는 항상 아이같을 거고, 때로는 친구같을 거고, 무엇보다 웬수같겠죠...ㅎ

 

누군가를 사랑하는 경험은 참 두려운 것 같습니다. 언젠가 영웅 쌤은 저에게 "부모는 자식이 젓가락 잡는 것만 봐도 불안해" 라고 했었죠. 그때 아 청년같은 이 사람도 아빠고, 가장이고, 이런 모습이 있구나. 그리고 본인의 이야기를 고작 스무살 꼬마였던 저에게 솔직하게 나눠줘서 감사했던 기억이 나요. 그땐 제가 너무 어려서 제가 하고 싶은 고민만 털어놓고 쌤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지만 늦게나마 감사하다고, 그리고 아마 쌤의 자녀분들은 쌤같은 아버지가 있어서 든든할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원래 부모 자식 관계는 어려운 것 아니겠어요. 그래도 아마 우린 학원을 몇개 다니는지와 상관 없이 잘 살 거에요. 부모님도 자녀분들도 우리 너무 걱정하지 않는 걸로 해요 ㅋㅋ 다 괜찮을 거에요.

 

내몸 하나 건사하기 이 힘든 세상에 강한 책임감으로 자녀분을 케어하시는 용감함과

본인이 아는대로 살기보다는 정말 자녀분께 맞는 게 뭘까 열린 고민을 해주시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훌륭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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