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너무 시끄럽고 번잡하게 변해서, 난 지금 나와의 시간이 필요한가봐." - N
2주전, N과 J를 만났다. 스무살때 시작해서 각자 미숙함을 정답삼아 여기저기 부딪힌 역사를 공유한 사람들. 내가 이렇게 오랜만에 만나도 예전이나 지금이나 송도 스타벅스에서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하고 미래를 고민하고 앞으로 나아가던 그때와 느낌이 똑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사실 우리만 그렇게 느끼지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우리가 그렇게 보이지 않을거다. 누군가는 새로운 학위를 땄고 시험을 마쳤으며, 누군가는 고비를 넘어 사업을 계속하고 있고, 나는 직장을 옮기고 주위 사람들이 바뀌고 더 많은 책임에 익숙해지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각자의 어려움을, 우울증을 거쳐온 경험을 이야기했다. 늘 씩씩해보이던 사람들이 그런 시간이 있었음에 놀랐고, 너무 늦게 어려움을 나눠줄수 있어서 미안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씩씩한 모습으로 돌아와준 이 사람들이 있음에 위안받았다.
N이 최근에 자신과의 시간을 확보하는게 너무나도 필요한데 그러기 점점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세상이 빨리변하고, 내가 캐치업해야할 것도 많고, 그래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내가 정말 원하는 것과 가는 길을 되짚어보기 위해 지금 나와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아 너무 멋진말이 아닐까? 나와의 시간이 필요하다. 예전에는 공격적이고 외향적이었는데 지쳐서 이젠 체력이 딸려서 집에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변한거 같음에 우울해하지도 않고, 그저 나와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자기 자신을 잘 꿰뚫어보고 주도적으로 나아가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예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N과 J와 다르게 내가 그냥 되는대로 살았고, 아직도 쉽게 흔들리는 사람이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요 1-2년간 집에서 청소를 하고, 나를 돌보고, 공부를 하고, 글을 쓰고 영화를 보는 시간이 늘어났던 것은 어쩌면 이 흔들리는 세상과 또한번의 성장기에서 내 새롭고 더 강해진 뚝심을 길러야해서 그 반응이었을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Safety Zone에서 잽펀치만을 날리지 않고 더 크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사람은 결국 나아가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의 잠복기를, 닥쳐올 세상에 도끼를 가는 시간을 소심하고 체력이 떨어졌다는 주위의 시선에 싸게 팔아버리지 않아도 좋다. 더 깊은 고민과 공부를 한 만큼 우리는 더 넓은 세상에 더 깊은 울림을 줄거니까.
얼마 전 아는 분의 페이스북에서 홍수피해에 따른 반지하 주거공간 허가를 감축한다는 기사를 언급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나눠 주신 글을 봤다. 서울에 올라와, 반지하에서 시작해 위생과 깨끗한 주거권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던 나날들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반지하에는 때론 물이 차지만, 그렇게 살림을 다시 닦고 추스려 나아가면 된다고.
다시 추스려 나아가면 된다. 그 이야기를 해준 사람이 최근없었다. 이겨내고 또 이겨내서 여기까지 왔는데 부모님의 갱년기와 계층의 사다리를 올라가기 위한 싸움이 다시 내 눈 앞을 가로막았다. 난 내가 더 똑똑하고 여유있고 배운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면서 좋았지만, 10년마다 몇천만원씩 증여받아 1억 몇천씩 끼고 시작하는 친구들, 나보다 양질의 교육을 받고 몸에 배어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들과 스스로를 비교하며 난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괜찮다고, 출발선이 달랐을뿐이라고. 다시 추스려 나아가면 된다. 이제까지 우리 셋은 잘 왔고 잘 버티고 있으니까. 지금의 이 고민이 또 닥쳐올 인생의 큰 고비에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도록 지지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흔들리는 건 나쁜게 아니다. 마주보고 겸손하게 깎아 나갈수록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어려움은 온다. 자신의 배경, 출신, 이런것과 상관없이 내가 되고 싶은 인간상을 스스로 정하고, 그 이상이 더 명확하고 발전적일수록 더 어려울 거다. 그래도 괜찮다. 이렇게 세상에서 작은 요새를 만들어 내 사람들과 시간을 같이 보내고, 내 안의 불꽃이 사라지지 않도록 돌봐 주고, 그렇게 단단해져 가면서 결국 하나씩 이루게 될 거니까.
힘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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