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민이 되는 것이 두렵다는 당신에게
0. Kris 전무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이 aspiration 이 변할수도 있다는 화제가 잠깐 나왔다. 꿈을 부르짖던 젊은이가 가족이 우선이 되는 가장 또는 엄마가 되기도 하고, 안정성이 제일 중요한 가치가 되기도 한다. 그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0-1. 한국 사회에서 점차 나이가 들어가면서 우선순위 1이 가족이 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진짜 전무고 뭐고 가족 앞에 장사 없다. 나름 전무님이면 사실 높은 사람인데 딸내미 학원 끝나면 픽업가고 집 와서 밥차려줘야됨. 맛없다고 하면 국이라도 끓여줘야되고 딸내미 짜증내기 전에 학원 픽업가기 위해 미팅을 서둘러 끝내야 된다.
근데 그런 걸 다 이해하게 되더라. 사람에 대한 이해가 높아진 것 같다. 그리고 그런걸 이해하게 되면서 내 사업적인 감각도 는 것 같기도!
0-2. 얼마전에 현모님이 페북에서 말해줬던 것처럼 시장이 그렇게 가야되면 공부해야된다.
포용하지 않고 열리지 않으면 성장하며 생존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 내가 반려동물 안키우고 고기처돌이여도 일단 비건이라는 움직임이 왜 형성되고 패러다임이 어떻게 가는지 봐야 한다는 뜻이다. 나만 아는 세상에 갖히고 고집하는게 아니라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아야됨.
1. 나도 변했다. 스타트업만 다녀봤던 나에게 큰 회사 경험은 일반적인 삶을 지켜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됬다.
스타트업에 나는 잘 맞았다. 처음에 대기업에 취업했을 때는 내가 안주하는 것 같고 내 과감한 메시지가 먹히지 않아서 난 이 환경에서 안되나 그런 좌절아닌 좌절,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항상 고민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애초에 내가 부족한 걸 채우기 위해 다시 대기업에 온 거니까, 부족하면 뭐가 부족한지 보고 누에고치처럼 허물을 벗어 새로운 나비가 되야 했다.
고통스럽게 고민해본 결과(아마 앞으로 계속 고민해야겠지만) 적응은 타협이 아니다. 나 자신을 여기까지 이끌었던, 끊임없이 갱신하고 나아가는 자질만 계속 가지고 있으면 되는거다.
2. 내 가장 큰 변화를 이끈 요인은 집이다. 오늘의 집이 왜 잘되는지 알게 되고 진심 왜 주부들을 대상으로 한 생활용품 홈쇼핑이 잘되는지도 알게됬다. 홈쇼핑 매출 숫자를 그냥 보는 것과 뼈로 느끼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원룸 월세생활에서 투룸 및 거실이 있는 전셋집으로 옮기니까 집을 돌보는데 생각보다 시간과 돈이 많이 든다. 이제 요리도 하니까 피코크도 새벽배송으로 주문해야되고 전혀 안사던 그릇 브랜드도 찾아봐야 된다. 창틀도 닦아야되고 욕실 습기도 제거해야되고 하루가 끝나면 싸리빗자루로 한번씩 쓸고 주말 대청소만 하는게 아니라 매일매일 조금씩 집을 돌보는데 주말 대청소 및 옷정리를 하다 보면 하루가 다 가버린다. 집안일이 이렇게 많은 삶의 비중을 차지하는 지 몰랐다.
3. 그러고 보면 자기가 독립도 해보고 일도 해보고 한 중고신입들이 생초짜 학부졸업생들하고 비교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좀 사회생활 해본 사람들이어디서 돈이 나오는지도 안다.
4. 현실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달라서 내가 타협할까봐 무섭다면, 최선을 다해서 삶으로 뛰어들면 된다. 거기서 나름대로 꿈을 정의하고 내 자신에게 깨어있도록 하는 가장 중요한 자질만 놓지 않으면, 오히려 내 세계는 더 넓어졌으면 넓어졌지 소시민으로 머물지 않는다. 생각이 깊어지며 거기서 나아갈 따름이다.
꿈밖에 모르던 이십대 초반의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객기도, 고민과 함께 나름의 발전을 거쳐나가는 2030도, 점점 완숙해지며 유치함도 함께하는 40대 그리고 그 이상도 모두 내 인생의 중요한 스텝이며 그 순간은 모두 정답이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오늘을 열심히 살라는건, 오늘의 정답이 되는 모습이 내일은 정답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그때나 지금이나 우린 잘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