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서울 디자인 페스티벌 관람 후기
난 컨퍼런스를 좋아한다. 아무것도 없이 열정만 많을 시절 퍼블리 칸 광제 리포트를 읽고 그때당시 우승우 대표님의 밋업을 들었던 게 시작이었다. 나도 나만의 컨퍼런스 일기를 써야지! 하며 essay를 본부에 제출해 student 패스 할인을 받고 교수님들을 설득해 출석계를 받아 싱가폴 국제 광고제에 갔다. 그때의 과감했던 도전때문인지 컨퍼런스에 갈때마다 떠오르는 배우고자 했던 어린 제시의 열망과 서로 다른 아이디어가 충돌하는 공기 속에는 항상 특별한 게 있다. 요새 컨퍼런스를 가는 나는 조금은 더 세련되졌고 안정되졌지만 내 마음속에는 아무것도 없던 시절 없는 돈내고 와서 맥북 2016 프로 를 배낭에 넣고 세션 부스마다 돌아다니며 한자라도 빼먹을까봐 열심히 타이핑하는 내가 있다.
https://my.designfestival.co.kr/fairDash.do?hl=KOR
벌써 올해로 4년째인 2020 서울 디자인 페스티벌. 2017년부터 보기시작했는데 꼭 그려러고 한건 아니고 지훈오빠가 어디서 초대장을 받아다 주고 친한 언니가 부스를 열면서 구경하러오라고 초대해주고 해서 어쩌다보니 매년 말 한해를 정리하는 행사로 가게됬다! 유명한 매거진 월간 디자인이 국내 유명 디자인을 소개하고 신진 디자이너가 세상에 빛나는 자리를 마련해 국내 디자인과 세계 디자인을 소개하는 교류의 장을 만드는 것을를 목표로 하는 행사다. 언택트에 지치고 어느새 한해가 다갔나 싶어 얼떨떨한 마음을 가지고, 올해도 출동했다.
이전 행사 대비 축소된 규모, 다소 실망스러운 Theme과 구성
기대를 많이하고 가서 그런지 다소 실망스러웠다. 올해 코로나 때문에 참가부스도 적어서 그런가 작년 재작년보다 규모도 적고 밀도도 적어보임. 올해의 주제는 "미래의 디자인". 뉴노멀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가서 좀 미래디자인에 대한 생각도 들어가고 언택트 시대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에 맞아떨어진 디자인이 나올줄 알았는데 그런건 없었음. 디렉팅 가이드에 의하면 슈퍼디자이너와 영디자이너가 한자리가 모인 것이 컨셉이라는데 그렇다기엔 영디자이너들의 부스도 전년대비 크게 많아지지도 않았고(아마 후원이 배민밖에 없어서인것 같음) 슈퍼디자이너의 작품도 그렇게 와닿게 많지도 않았다.
다소 넓은 범주의 주제라서 그런가 2017년의 일코노미 때처럼 딱히 하나의 Theme아래에서 부스들이 모여서 꾸려진 느낌은 없었음. 특히 개인 캐릭터를 위주로 한 부스들을 돌때는 서울일러스트페어랑 거의 차이 없게 느껴짐!
그래도 역시 신진 디자이너의 아이디어와 작년대비 디자인 패러다임의 변화를 느낄 수 있어서 + 사람도 많이 만나서 즐거운 시간이긴 했다.
네이버가 협찬을 안해서 그런가, 후원 부스도 적어보였다. 최근 몇년간은 네이버가 협찬하면서 네이버 디자인 토크 부스같은게 있어서 네이버의 제품디자인/브랜드 디자인/테크니션 등등이 자사의 디자인 프로세스나 프로젝트, 철학같은 세션을 하고 질문받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게 엄청 유익해서 일부러 그 세션 시간을 맞춰가고 했었다. 올해는 없어서 많이 아쉬움 ㅠ 그래서인지 원래 현장구매 만원 이었는데 입장료도 만 이천원으로 올해 올랐다.
재생 패러다임과 문제해결: 디자인이라는 개념의 확대
매년 디자인 페스티벌을 계속 가다보면 겉보기엔 똑같아보여도 미세한 차이들이 있고 그 작은 차이들이 당해년도 페스티벌 경험에 큰 간극을 벌린다. 디자인은 단순 예쁜이 작업에서 그 개념이 확대된지 오래됬다. 지적 자본론과 츠타야서점류의 도서가 떠오르며 디자인읜 기획이 됬고, 실리콘밸리와 HCI가 사회의 주요 아젠다가 되면서 UI/UX 사용자 경험으로 그 개념을 확장했다. 올해 느낀 새로운 디자인의 영역은 재생과 지속가능성, 그리고 사회문제해결의 주체다.
친환경소재, 핸드메이드, 지속가능한 소재를 활용한 부스들이 유독 많았다. 친환경 갈대빨래 부스의 존재가 굉장히 의미있는 변화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갈대빨래는 아무래도 빨래다 보니 심미적인 장치도 크지 않은 제품이다. 정말 이 제품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material 제조 과정과 쓰임만을 설명했는데 아 이젠 심미적으로 예쁘지 않아도 문제를 해결하는 제품은 결국 제품의 설계고, 중요한 디자인이구나. 라는 깨달음이 느껴짐. 그리고 그런 시대적인 요구가 있고. 사실 전부터 이런 제품 설계도 넓게 보면 디자인이었으나 이전의 서디페는 캐릭터, 굿즈, 마음을 울리는 귀엽고 예쁜 것들이 주를 차지했던걸 생각하면 재미있는 변화였음.
그 외에도 코로나시대 운동하기 힘든 시기 실내에서 최소 움직임 반경으로 최대 운동 효과를 만들 수 있는 밸런싱 보드나, 모텔과 같은 버려진 숙박업소를 리모델링해 부족한 청춘들의 주거시설로 재탄생시키는 게릴라즈, 일회용품 없는 페스티벌 운영 서비스 기업 Trash Busters 트래쉬 버스터즈, 프라이탁과 비슷한 아이디어인데 폐현수막으로 에어팟 케이스, 카드지갑, 가방을 만드는 Nukak, 폐종이로 노트를 만드는 기업 페퍼린트 같은 신재생 제품 부스가 제일 재밌었다. 그리고 그런 신제품들이 전혀 젊은 층에게 구닥다리거나 선심쓰듯 구매하는 저품질의 제품이 아니라 힙하고 입맛에 맞는 제품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 재미있는 흐름.
디자인은 이제 중요한 비즈니스 필라(Business Pillar)
디자인은 이제 비즈니스의 아이덴터티이며 신사업을 바이럴시키는 중요한 매개체이다. 더이상 로고나 명함 디자인, 예쁜이 작업에 머무르지 않는다. 서디페같은 디자인 컨퍼런스는 자사의 디자인 또는 비즈니스 철학, 굿즈들을 소개하며 자사 제품 홍보의 장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맥주 라벨과 BI, 제품을 소개하며 인스타그램 팔로우 이벤트를 하는 등 이번 서디페에서는 관람자가 직간접적으로 브랜드를 체험하게끔 하는 engagement event 를 하는 부스도 많았다. 물론 딱히 디자인과 관련 없이 제품만 홍보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부스도 있었다 이게 왜 디자인 페스티벌 부스지? 싶은것들..
충주 특산물 사과를 사용한 사과향 사이다 주류(소머비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를 판매하는 댄싱사이더는 예쁜 BI와 굿즈, 주류 라벨을 소개하며 시향 및 판촉 부스를 열었는데 그들의 맥주를 시음하는 줄이 모든 부스 중에서 제일 길었다고 한다... 순간 맥주 페스티벌인줄
https://smartstore.naver.com/dancingcider
또 웃음짓게 만들었던 디자인은 꿀건달! 곰도 꿀렁꿀렁 춤추게 만드는 꿀을 귀여운 곰 패키징에 담아서 판매한다. 패키징이 귀엽고 꿀렁꿀렁 이라는 소리가 놀이적인 요소를 줘서 다들 한번씩은 구경하고 가던 부스!
https://smartstore.naver.com/ggulgundal
1인 디자인스튜디오의 미래 - 조구만 스튜디오
이번 페스티벌 참석의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제일 좋아하는 디자인 스튜디오인 조구만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대학다닐때 대학 축제 한구석에서 학교 마스코트를 예쁘게 재탄생한 캐릭터를 그린 스티커와 엽서, 티셔츠를 팔던 조구만은 어느새 무럭무럭자라 새로운 디자인 컬렉션으로 올리브영과 콜라보도 하고 어디 가서 조구만이라고 하면 어 저 그거 알아요! 라고 하는 엄연한 라이징스타 디자인 스튜디오가 됬다. 심지어 이번 부스 2개 빌림!! 더 성공해서 저를 채용해주세요
1-2인 규모의 소규모 디자인스튜디오였던 조구만 스튜디오는 자신만이 할수 있는 개성있고 귀여운 캐릭터, 메시지를 내보내다가 최근 협력사를 끼고 가게 됬다.
개인사업자, 1인 스튜디오가 벌 수 있는 돈도 한계가 있다. 최근 디자인 쪽 아는 1인 작업자, 개인사업자들도 슬슬 일감이 몰리고 스케일을 올려야하자 법인은 부담스럽다했지만 결국 사람을 고용하고 오피스를 낸 뒤 법인으로 돌렸다. 꼭 돈이 아니더라도 좀 더 원하는 업무의 본질(주로 디자인)에 집중하기 위해 기본적인 품질관리와 배송, IP 를 가지고 제품 라인 늘리기, 고객문의 및 대응 등등은 협력사를 끼거나 직원을 채용하는 경우는 많은 것 같음. 1인 스튜디오의 오리지널리티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일이 많아지는 걸 어쩌랴. 오리지널리티를 최대한 지키고 스케일업하기 위한 1인 스튜디오들의 자연스러운 넥스트 스텝이다.
Outro
사람들을 만나고 현장이랑 호흡하며 에너지를 얻는 스타일이라 이번 코로나-언택트 물결이 유독 힘들었고 나날이 확진자가 늘어가는 상황에서 페스티벌에 찾아가는게 망설여지기도 했다. 서디페가 작년보다 아쉬웠든 어쨌든 다녀오길 잘했다. 아이디어나 파보고싶은 화두들도 많이 생겼고, 나중에 읽어보고 싶은 책들의 이름을 적어 오고 나니 모처럼 활기가 돌았다. 조구만스튜디오의 문구를 잔뜩 사버린것도 빼놓을수 없지
어려운 시기에 부스를 준비하고 행사를 꾸려준, 행사를 나름의 방식으로 즐겨준 사람들 모두 수고 많았다. 올해는 정말 한 해가 어떻게 가는 줄 몰랐는데 정말 서디페까지 끝나니까 한해가 끝나가긴 하는 거같다. 내년엔 또 어떤 주제로 새로운 아이디어가 소개될지, 어떤 신진디자이너들이 부스를 세울지 기대하며 올해를 마무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