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x 번역] 코로나 바이러스는 단지 비극이 아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 기회다 - 프랭크 스노든 교수
안녕하세요, 해외 아티클을 번역 및 에디팅하는 <해외 IT 미디어 번역> 시리즈입니다. 오늘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뉴미디어 Vox의 유익한 인터뷰를 직역합니다. 따라서 이번 포스팅의 저작권은 전적으로 Vox에 있습니다. 오역의 여지가 있어보이는 문장이 있거나 이 기사에 대해 저와 커피를 한잔하며 대화를 나누고 싶으신 분은 다음 링크로 저에게 Reaching out 해주세요 :) > > Error Reporting or Coffee chat with Jessie (클릭하시면 제시에게 메일을 보낼 수 있어요 ㅎ!)
*원문 기사 보기(영문) >> https://www.vox.com/2020/4/10/21213287/coronavirus-covid-19-pandemic-epidemic-society-historian-nationalism-globalization
*Before you read >> 역사학이나 사회학, 사회병리학을 접할 기회가 적어셨던 분들은 프랭크 스노든 교수님이 낯설 거에요. 전염병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으로 <전염병과 사회>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미 예일대 교수인 스노든은 "전염병 그 자체가 없던 전에 없던 위기를 만들어내기보다는 늘 그 사회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공격했다"고 분석합니다. 신과 인간과의 관계, 정치구조 등 역사를 통틀어 전염병은 전례없는 사회 변화의 기회를 제공해 왔습니다. 아래 아티클처럼 과연 전염병의 해답이 포퓰리즘인지 저는 확신하지 않지만, 전염병이라는 화두로 역사와 사회를 꿰뚫는 식견은 그 깊이가 감동적입니다. Vox 아티클, 한글로 읽어볼까요?
“코로나 바이러스는 눈 앞에서 펼쳐지는 커다란 도덕적 드라마이다.그 결론은 아직 씌어지지 않았다."
예일대의 역사학자 프랭크 스노든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염병은 사전 경고 없이 랜덤으로 발생해서 변덕스럽게 사회를 공격하는 이벤트가 아니다.오히려, 모든 사회는 그 스스로의 고유한 취약한 부분들을 만들어 왔다. 그 취약점들을 조사하는 것은 사회의 구조, 그 사회의 정치적인 우선순위와 삶의 규준들을 이해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비극은 때대로 미래의 가능성이 될수 있다. 스노든에 따르면, 팬데믹은 사회의 현재 존재하는 취약점만을 반영하기보다는, 전례없던 사회변화의 기회를 보여 준다. 그의 새 저서, <전염병과 사회>에서 스노든은 시간을 통틀어 전염성 질병들이 전쟁의 결과를 바꿨고, 정치 개혁을 촉진했으며, 사회 계혁을 무너뜨렸고, 전체 사회가 신과 맺는 관계를 변형시켰으며 근본적으로 인간 역사의 흐름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탐색한다.
스노든이 따르면, 우리는 한 종(種)으로서 두 갈래로 나뉘어지는 교차로에 서 있다.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핑계 삼아 외국인 혐오, 민족국가주의, 부족주의로 회귀할 수도 있고 더 나은, 더 공정한 세상을 세울 기회로 사용할 수도 있다. 전염병들은 역사를 통틀어 두 반응을 촉진시켜왔고, 지금의 역사는 아직 씌여지지 않았다. 우리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우리 생에 가장 중요한 선택 중 하나가 될 것이다.
Frank Snowden 과의 전화 인터뷰
기자) 교수님은 책에서 페스트(bubonic plague), 천연두, 에볼라바이러스 등 무엇이 되었던 전염병은 사회를 완전히 랜덤한, 무작위적인 방식으로 공격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어떤 원인들로 전염병이 사회에 영향을 미칠것임을 알 수 있나요?
Frank Snowden) 미생물의 세계는 무한한 개수의 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모든것들은 계속적으로 진화하죠. 각자는 그 스스로의 성질을 가지고 잇고 그렇기 때문에 . 각 사회는 그 스스로 통로(가능성)를 만들어낸 질병에 걸립니다. 전염병은 가장 큰 취약점과 가닿는 경우가 많고 그 취약점을 철저하게 이용하죠.
19세기 아시아 콜레라(Asiatic cholera)는 산업화의 고질적인 질병이었습니다. 그 시기의 사회는 걷잡을수 없이 갑자기, 그리고 혼란스럽게 도시화되고 있었죠. 위생이란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었습니다. 공기는 악취로 가득했습니다. 하수 시설이나 화장실은 찾아볼 수 없었고 깨끗한 물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배설물로 오염된 물과 음식을 통해 질병이 창궐할만한 환경이었습니다. 그리고 장티푸스와 아시아 콜레라가 그 시기에 발병했죠.
오늘날, 뉴욕, 로마, 런던에서 우리는 아시아 콜레라를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위생적 발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수 시설이 있습니다. 우리는 깨끗하고 안전한 마실 물이 있죠. 우리는 위생적인 생활 습관을 가지고 있으며 도로는 포장되어 있고, 깨끗하게 청소된 빌딩과 빌딩 번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이상 그런 종류의 질병에 취약하지 않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천하무적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문명화된 방어막들이 우리를 자연 세계로부터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기자) 우리를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 취약하게 만든 사회적 조건들은 무엇입니까?
Frank Snowden) 우리는 다른 종류의 세상을 만들어 왔습니다. 세계화 라는 세상이죠. 산업화 시기와는 전혀 다른 형태이고, 이 형태 역시 다른 종류의 취약점들을 만들어냈죠. 세계화는 엄청난 인구 증가를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우리는 8억 인구의 세계에 다다르고 있고, 인구 밀도가 더욱 높아질 것을 함의합니다.
우리는 무한한 경제 성장의 신화에 빠져 있습니다. 지구는 유한한 자원을 가지고 있음에도 말이죠. 이 불균형은 우리가 세상과 맺는 관계를 형성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동물 서식지를 파괴하고 침범합니다. 그 결과 우리는 전에 자주 마주치지 못했던 동물들을 마주하고 접촉하게 되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동물들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미생물 저장고에도 도출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에 마주치지 못했던 질병들이 넘쳐나게 됩니다. 조류독감은 야생 가금류로부터 생겨난 흘러넘침 효과(Spillover)입니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박쥐로부터, 메르스도 비슷한 경로로 파생되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도 같은 방식으로 또 한번 우한과 같은 축축한 시장에서 발병한 것입니다.
또한 대규모 항공 여행의 경우, 하루에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자카르타에서 발병한 질병이 저녁에 런던, 파리, 멕시코 시티에서 뻗어나가기 쉬워진 것입니다. 이러한 연결들은 우리를 비행기를 타고 여행해 온 질병들로부터 극도로 취약하게 만들고, 우리의 밀집된, 팀으로 이루어진 도시들에서 창궐하도록 합니다.
기자) 이쯤에서 말씀해주신 것을 이해해 보고 싶습니다. 분명히, 세계화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하지만 저는 문제가 세계화 그 자체에 있는 건지, 또는 진짜 문제는 세계화와 국가주의의 갭이 아닌지 알고 싶습니다.
지금 현재, 우리는 단지 연결된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상호 연결성을 부인하는 국가주의 리더들로 가득한 연결된 사회에서 살고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조합(확실히 연결된 세상과 다시 부흥하고 있는 국가주의)이 펜데믹과 같은 세계적인 문제를 서로 조화로운 세계적인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을 막는 것이 아닌가 궁금합니다.
Frank Snowden)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것은 어떻게 대처하자고 정의되지 않은 것들이죠. 사람들의 머릿 속에 있는 생각이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단지 우리가 세계화 된 세상에서 취약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가 굴복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긍정적인 점도 있습니다. 우리가 만들어왔던 것과 다른 방식대로 전 세계를 매니징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머릿 속의생각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따라잡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예를들어, 기자분이 언급했던 것처럼, 국가별 경계에 대한 생각도 그렇습니다. 만약 그것이 팬데믹이 주는 가르침이 한가지 있다면, 국경의 의미가 이상할 정도로 없다는 것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이 공기로 전염되는 질병은 국경을 가리지 않습니다. 국가간 장벽도 가리지 않죠.
나는 트럼프의 보호정책(Trumpian wall) 이 우리 세대를 지칭하는 비유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를 무장해제시키고 오히려 우리를 다른 종류의 미생물, 또다른 질병 발생 시에 취약하게 만듭니다. 그 모든 것들은 사실 어느정도 미래에 피할 수 없는 사건들이죠. 지금 가장 위험한 것은 EU가 해체되어야 한다라는 생각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우리가 가장 필요한 것이 협동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진짜 비극은 EU가 작은 조각들로 쪼개지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대처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고있듯이 이것은 지구의 일부에만 영향을 미치는 질병이 아닙니다. 이것은 인류애에 관한 질병입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전이될 수 있습니다. 전체 민족 그룹을 비하하거나 폄하하는 것은 생물적인 관점에서도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지금 볼 수 있듯이 이것은 지구의 일부만 영향을 받는 질뭉이 아닙니다. 이건전 전 인류의 질병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죠. 우리가 실제로 마주하고 있는 실제를 따라잡을 수 있는 의식 수준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진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문제 해결방안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하죠. 전체의 민족 집단을 배척하는 것은 실제 생물학적 현실의 관점에서 전혀 쓸모가 없습니다.
기자) 제 생각에 교수님이 다다른 결론은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를 세계적으로 갈림길에 서 있다 라는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국가주의자들의 우리는 더 닫힌 세계가 필요하고, 담을 쌓아야 하며, 우리의 세계화를 위한 시도들이 틀렸다는 정서를 공고하게 했는데요. 또는 우리는 세계회된 사회는 더욱더 세계ㅈ거 공조가 필요함을 깨닫게 될 수도 있겠네요.
이러한 관점에서, 교수님의 책에서 제게 와닿았던 문장이 있습니다. "전염병에 대한 공포 중 하나는 인류애에 대한 공통적인 결속을 무너뜨렸다는 것에 있다." 이것은 일반적인 현상인가요? 전염병은 분열된 사회를 연대라는 이름 아래 모이게 하나요 또는 현재 존재하는 분열을 가속화하고 사회를 멀어지게하나요?
이런 관점에서, 책에서 제 머릿 속에 박힌 문장이 하나 있습니다. "전염병의 확산이 주는 공포 중 하나는 인류애적 공통 결속을 무너뜨릴 것이라는 것에 있다" 원래 그런 건가요? 전염병은 분리된 공동체를 연대의 이름으로 뭉치게 하나요, 또는 현재 존재하는 분리를 가속화하고 사회를 떨어지게 하나요?
Frank Snowden) 끔찍한 걱정입니다. 전염병을 우리 뒤에 감춰진 우리를 비추는 거울로 비유하곤 하는데요. 도움이 되는 동시에 무서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거울 속에서 보고 있는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기 대문에 유용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더 어둡게 볼수도 있고, 더 밝은 스스로를 볼 수 있기에 무섭습니다.
여기에 선택지가 있습니다. 말씀 주셨다시피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는 이 순간 하나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비참하고, 끔찍한 몇 달의 시간을 보내고 있죠. 하지만 이 사태가 지나가면, 우리는 더 나은 세상, 더 과학적이고, 이성적이고, 인간적이고, 국제적인 사회를 건립할 기회를 갖게 됩니다. 또는 우리는 역해결책을 택해서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끔찍한 경험을 되풀이되도록 할 수 있겠죠.
제 바램은 우리의 밝은 자아가 더 우세하게 활동하는 것입니다. 제가 두려워 하는 것은 세상에 여러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이 있는데, 우리가 더 분절되고 혐오가 넘치는 사회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 이 나라의 보수 집단 중 여러 큰 단체들이 Covid-19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을 하지 않고 다른 쪽-주로 외국인-에 책임을 묻고 있죠. 이것은 폭력과 민족간 갈등을 불러일으킵니다.
"사회는 전염 통로와 채널을 스스로 창조해 낸 질병에 걸립니다."
기자) 우리의 어두운 자아가 우세해질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Frank Snowden) 페스트가 만연하던 시대에는, 기자분께서 언급했듯이 해결을 위한 아이디어와 시대착오적인 아이디어가 팽팽히 맞서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여기서 시대착오적인 아이디어란, 다시 말하듯이 분리주의나, 외국인 혐오, 마녀사냥, 비방, 잘못한 집단을 지정하고 우리가 공격할 제 3자를 찾아내는 것을 모두 포함합니다.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크에는, 그 시민들이 20만명의 유대인 공동체를 유대인 묘지로 보냈습니다. 그들은 페스트의 원인이 기독교인들이 마시는 우물들에 독을 푼 그들의 종교라고 주장했죠. 유대인들은 개종하거나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해야 했고, 그중 절반의 유대인들은 종교를 고수했고 산채로 화형당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그당시 전염병의 시대에 나왔던 분리주의, 폭력, 외국인 혐오의 일부였습니다. 인간으로서, 우리의 깊은 심리를 자극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 사건은 깊이 내려앉아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죠-결국 죽게 되는 존재로서, 우리는 무엇인가? 죽음은 또 무엇이고, 다른 사람, 가족, 공동체, 친구와 함께하는 인간적인 결속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정치/보건 공무원들에게 어떤 권리를 주어야 하는지?
이 모든 것들은 전염병으로부터 비롯한 것임과 동시에 엄청난 두려움을 양산했습니다. 그래서 평상시와 같지 않은 대처를 하게 되는 거죠, 즉각적인 두려움과 긴장으로부터 비롯한 대응을 할수도 있고, 우리의 지성을 사용해서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서로에게 의지해야 하는 동시에 과학적으로 대처해야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도 있겠죠. 이 질병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매커니즘은 무엇인지? 저에게는 팬데믹이 이러한 기회를 제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전염병의 역사는 모두 다 우울하거나 절망적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늘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팬데믹의 시기에 두려움으로 인한 몇가지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긴 했지만, 팬데믹의 역사는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남겼죠. 현대의 공공 보건은 페스트 시기에 발전된 것이고, 오늘날에도 우린 거기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우리의 목숨을 살려 왔습니다.
진보의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우리 앞에 놓인 선택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아직 갈림길 위에 서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까요?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도덕적 드라마입니다. 그리고 그 대본은 아직 다 씌여지지 않았습니다.
기자) 우리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대본을 써 나가는 것을 선택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끔찍한 팬데믹을 앞에 두고, 더 나은 우리 자신을 선택한 사회는 어떤 것일지 말해 주실수 있나요?
Frank Snowden) 가장 유력한 예시는 19세기 보건위생 운동입니다. 산업혁명시기 비정상적인 죽음을 해결하기 위한 실제적인 시도였죠. 그 시기에 런던, 맨체스터, 파리, 나폴리, 뉴욕의 사람들은 엄청난, 계획성없이 더럽고 붐비는 도심에서 살고 있었죠. 그 당시에는 이 환경이 대규모 죽음이나 장애를 만들지는 않을 것이며, 뭐라도 되겠지 라는 생각이 팽배했습니다.
최고 수준의 전문의들이 그들이 보는 환자와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적인 환자들과 연관관계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되엇습니다. 그들은 "사회적인 처방"이라는 개념을 만들었죠. 처방이란 단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또한 질병을 유발하는 사회적인 요인들도 포함한다는 것이었죠.
이 생각은 보건위생 운동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들은 영국 전역의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대규모의 조사를 하게 됩니다. 치료사들은 모든 공동체로 찾아가 그들이 살고 있는 환경에서 어떤 조건들이 있는지 기록했습니다. 당시에는 건강 중앙 관리부가 있었고 이 모든 활동을 결집하고 혼란스러운, 무계획적인 사회를 개혁하기 위한 연속적인 방법들을 개발해 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규모를 상상해 보세요. 그것은 영국의 모든 장소에 배수 시설과, 깨끗한 물과, 깨긋한 주거 시설, 규제된 주거 시설들을 새로 제공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처음으로, 우리는 한 국가가 보건 규정과, 빌딩 코드와, 최고 수준의 주거 요구 환경들을 지키도록 하는 것을 지켜본 것입니다. 엄청난 비용을 충당하는데 3분의 2 세기가 소요되었습니다. 19세기의 영국에서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했다고 할 수 있죠. 영국의 주민들은 훨씬 건강했습니다.
이 예시와, 질병에 대해 생각하는 자세, 프랑스에서도 같은 일이 있었다는 것은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리고 벨기에, 네덜란드, 미국, 이탈리아로 퍼져나갔죠. 이건 엄청난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우리는 넓은 대로, 도시의 공원들, 모든 종류의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의 단면들에 수혜를 베풀었던 시기입니다. 이 모든 것은 장티푸스와 콜레라로부터 생겨난 유산이었던 거죠.
기자) 유럽 사회들이 이러한 갈림길에 마주했을때, 저는 어떤 요인들이 선택에 있어서 차이를 만드는지 궁금합니다. 위로부터의 리더십인가요 아니면 아래로부터의 수요인가요?
Frank Snowden) 단지 아래로부터의 협력 뿐만 아니라 위로부터의 리더십의 협조도 필요합니다. 전염병의 산물 중 하나는 현대 정보를 새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전염병은 보건 당국들을 필요료 했죠. 그들은 엄청난 세금 징수를 필요로 했습니다. 그들은 합법적인 정부 당국도 필요하고, 행정적인 인구 통계 데이터도 필요합니다. 또한 병원도 필요하죠. 해군은 14일 자가격리 함대에 있어야 하고, 땅에서는 사람들을 자가격리시킬 행정적인 권력도 필요하죠.
우리는 이러한 정치적 생각들을 현대 자유주의자의 창시자인 토마스 홉스와 존 로크같은 사람들의 저술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삶이란 형편없고, 잔인하고, 짧다고 주장했으며 실제로 페스트의 시절 그랬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안전하게 지킬 권력이 필요했습니다.
이 보건위생 운동은 현대 정부를 도움을 줄 수 있는, 엄청한 새로운 힘을 부여한 새로운 객체로 만들어냈습니다. 물론, 힘은 그 자체로 문제를 가지고 있죠. 부정적인 결과를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치적인 힘 없이, 정부 없이, 보건위생당국없이 살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일종의 서바이벌 키트의 일부입니다. 제 생각에 코로나 바이러스는 그들 없이 한 생명이 얼마나 다시 형편없어지고, 잔인해지고, 짧게 스러질 수 있는지 보여준 것 같군요.
Roge Karma) 흥미롭네요. 1980년대 이후로 미국의 국가적 믿음의 핵심적인 부분이 정부는 문제라는 것이었으니까요. 1990년대에 민주당의 빌 클린턴이 나서서 "큰 정부의 시대는 갔다"고 선언했죠.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병하고 기하급수적으로 사망사 수가 오르는 요즘 이 말을 자주 생각하고 합니다. 각 주(states)들은 헬스케어 자원을 위해 서로 싸우고 있고, 우리는 여전히 전염병을 다루기 위한 연합된 대응책이 부족합니다. 반 정부적 패러다임을 무너뜨릴 수 있는 한가지가 있다면, 아마 그건 이정도 규모의 세계적인 팬데믹이 아닐까 싶습니다.
Frank Snowden) 지금의 미국은 자유주의적 병폐가 재앙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 같습니다. 미국은 국가적인 계획이 없습니다. 우리 미래에 새로운 팬데믹은 겪을수밖에 없는 일이라는 과학자들의 말을 듣기를 거부했죠. 오히려 국가의 국민 건강 예산을 축소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코로나 바이러스 대처는 지휘자 없는 심포니와 같은 불협화음을 닮았죠. 모든 악기 연주자들이 서로 다른 자신만의 음악을 연주합니다. 국가별 정부가 이걸 말하면, 다른 주의 지도자들은 다른 걸 말하죠. 질병관리본부는 또 다른 것을 말합니다. 여러 정부들은 각자의 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학교 운영진들은 그들의 방식대로 끼어들고 있죠. 대혼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국가가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는 책무를 다하게 되는 지경에 와서야 국가가 얼마나 필요했는지 깨닫게 됩니다. 지금 보다시피 그렇습니다. 지금의 행정 조직들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전 홉스 시대 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토마스 홉스는 저서 <리바이어 던> 에서 인간은 이기적 욕망으로 쌓여있으며 인간은 그들 모두를 위압하는 공통 권력이 없이 살아갈 때 전쟁상태로 돌아간다고 주장하며, 강력한 정부와 군주의 필요성을 주장함*-번역자 주석)
제 생각에 준비의 부족이 우리가 오늘날 경험하고 있는 가장 큰 비극입니다. 그리고 준비라고 함은 단순히 더 많은 산소 호흡기를 확보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포함하지만요. 진짜 문제는 우리의 마인드, 마음자세, 그리고 지성입니다. 변화는 그런 것들에서 시작되어야 하죠. 만약 우리가 세계 보건 기구를 해체하고 담을 쌓고자 한다면, 우리는 다음 질병이 닥쳤을때 이번 보다 더 큰 재앙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기자)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코로나바이러스 이후의 세상은 어떻게 펼쳐질까요?
Frank Snowden) 우리는 단지 한명 한명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다시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당신에게 "나는 답을 알고 있다" 며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내놓는다면, 우리는 그 사람으로부터 할수 있는한 빠르게 멀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건 제가 생각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제가 생각했을 때 우리는 우리 모두의 머리를 모아서 다른 식으로 흘러갈 사회를 고안해보아야 합니다. 이미 준비된 것이기도 하고, 인간과 기후, 도시에 대한 관계를 새로 생각해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무한한 인구성장, 경제성장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신화를 재고해 보아야 합니다. 단지 서있을 만한 땅과 매연밖에 마실 공기가 없는 순간이 오기 전에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집단 맘모스 프로젝트 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암울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생각했을 때 이 작업은 신나고,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더 나은 세상을 세울수 있고, 우리의 손자들이 더 잘 살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 The End -
오역의 여지가 있어보이는 문장이 있거나 이 기사에 대해 저와 커피를 한잔하며 대화를 나누고 싶으신 분은 다음 링크로 저에게 Reaching out 해주세요 :) > > Error Reporting or Coffee chat with Jessie